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스크랩] (시편95:1) 초청의 노래

이요나 2007. 2. 26. 10:18

(시편95:1) 초청의 노래

 

(시95:7)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오늘 우리는 시편 95편을 공부하게 됩니다. 시편 95편부터는 그 템포가 상당히 흥겨워집니다. 이 시편들을 읽노라면 그 당시 유대인들의 예배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외형적 경건에 눌린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그 기쁨을 주체 하지 못하여 마치 어린아이처럼 뛰어 춤추며 손뼉을 치며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교회의 예배는 마치 늙은 교수들처럼 수염을 매만지며 점잔을 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점잔하고 교양된 모습을 하나님께 과시하려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이며 그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그를 기뻐하고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지으시고 기르신 영과 피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그 찬양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I. 구원의 반석 여호와께 오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1)

 

시편 기자는 먼저 오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축제로의 초청입니다. 잔치로 초청을 받는 것처럼 기쁨은 없습니다. 나는 1995년 생전 처음 미국 갈보리 채플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갈보리채플 목사로 안수를 받은 지 두 해가 되는 때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그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시도된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초청은 마치 하늘 잔치의 초청과도 같았습니다. 내 생전 처음 미국을 여행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깨달아 연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제 속에 춤을 추고 있는 친구들로부터의 초청은 이미 내 마음을 하늘나라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때의 축제의 날들을 기억하며 내 영혼을 만족시킬 그날의 기쁨이 다시 살아 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쁨은 내 인생 전체를 축복하며 내 호흡에 새로운 생명을 충족시킬만한 파워를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초청의 이유에 대하여 여호와께 노래하자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노래하기 위해 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야훼(YAWEH)로서 우리의 무엇 되신 주 곧 우리와의 관계성 하나님의 성호입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해 즐거이 부르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야훼의 사역적 의미를 언급한 것으로 그는 우리의 구속주이심을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궁극적으로 영혼을 포함한 인생의 그 모든 삶의 영역을 포함합니다.

 

시편기자는 계속하여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그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찬양은 감사함으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가 나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 영혼을 구속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게 하셨음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또한 감사의 마음은 마음에서 솟아 오른 시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큰 은혜를 체험하던가 기가막힌 절경을 보게 되면 그 마음에서 감탄이 솟아 오르고 그것은 바로 시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스스로 지어낸 이성적 표현이 아니라 감성과 지성을 가진 영감적 표현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는 3절에서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산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위엄과 권세를 언급한 것으로 자연을 초월한 권세자이며 통치자이심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가리켜 왕이라 할 때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왕과 같은 위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과 땅과 그 속에 속한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의 권세는 천지만물을 통치하시는 스스로 계신 왕인 것입니다. 이에 시편기자는 4절과 5절에서 그의 권위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심을 고대한다(롬8:19) 한 것입니다.   

 

II. 여호와를 경배하라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6)

 

시편기자는 6절에서 우리에게 다시 오라는 초청장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여기서는 그가 우리의 지으신 자이기 때문에 경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상황 속에서의 관계를 중요시 합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현실에 치중한 나머지 원초적인 관계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 주었다면 우리는 그를 기뻐하고 그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를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혈연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다면 그 은혜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를 만나게 되는 것은 나와의 어떤 관계 속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는 나의 극한 상황에서 나를 구속하고 가장 높은 계신 곳에 위엄과 권세를 가진 통치자로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이 나를 지으시고 나를 기르시고 내 인생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 손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늘에 속한 비밀인 것입니다.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1:3-5) 하였으며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히1:5) 하였고 야고보도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기자는 대저 저는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7)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오늘 초청의 메시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금 시편기자는 무엇인가 문제에 빠진 주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지어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8-10)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 3장과 4장을 함께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히3:15,16)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광야시대의 일들을 인용하여 회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히브리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메시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4장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 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이 메시지가 다시 종말의 날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강하게 전해지는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계속하여 그는 우리에게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하였으며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3) 경고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11) 하였습니다. 오늘 이 메시지를 듣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안식에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까? 오늘 오라는 메시지는 바로 구원의 문턱에 서 있는 당신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연일 초청 메시지가 홍수처럼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성령 춤바람, 성령 대부흥회, 생명의 축제 등등 그러나 그 홍수의 물결을 보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슬프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초청은 무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초청은 그들의 화장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위장된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9월21일부터 부천시에서는 샌디에고 호라이즌 채플의 마이크 멕킨토시가 이끄는 Festival of Love가 열립니다. 마이크의 친구인 나는 공식적인 연락을 받지 못한  체 이미 이 일은 어느 목사의 주선으로 3년 전부터 기획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최근 이 집회의 리더 마이크 멕킨토시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한국인들의 파티장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이끄는 Festival of Love 사랑의 축제로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초청하는 구원의 축제이며 왕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은혜의 잔치이며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나는 이번 집회를 위해 한국을 와야 하는 사랑하는 친구 마이크의 아들 필립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어서 우리에게 임하소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주여 당신의 크신 오른 손을 내게 내밀어 주소서. 이제 내가 당신의 능력 가운데 구원의 잔치를 선포하리이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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