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34편) 영혼의 송축

이요나 2007. 2. 26. 10:45

(시편34편) 영혼의 송축

 

(시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오늘 시편 34편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블르셋의 아기스 왕에게 쫒겨 가 있을 때의 노래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하나님의 상에 올린 진설병을 받아 먹고 하나님의 장막에 보관 중이던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빼앗은 칼을 받아 가지고 나와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 하였습니다.

 

그때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나아와 이 사람은 이스라엘 온 무리가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노래하던 다윗 왕이 아니냐 하매 다윗이 아기스 왕을 두려워 하여 갑자기 침을 흘리며 미친 체 하였습니다. 이에 아기스 왕이 신하들에게 이 미치광이를 내 집에 들어 오게 하였느냐 분노하자 다윗이 아기스 왕을 두려워 하여 아둘람 굴로 도망을 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 중에 환난 당하고 빚진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 사백명이 모여들어 다윗은 졸지에 불량자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이 의지 가지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게 됩니다. 그러나 환난 중에 더구나 자기 몸 하나 의거할 곳 없이 도망자가 되어 적군에 자기 몸을 의탁하였을 때 하나님을 송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2절에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긴박한 상황과 달리 그의 영혼이 여호와를 기뻐하고 높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긴박한 상황을 겪으신 일이 있습니까? 도저히 어떤 기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촉박한 시간에서 구사일생으로 생명의 보전을 받았다면 당신은 먼저 누구의 이름을 찬송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할 때 앞에는 홍애가 가로막고 있었고 또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나아갈 수도 없고 돌아 갈수도 없는 진퇴 양난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홍해 바다가 갈리진 것입니다. 이 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2) 여호와를 송축하였습니다.

 

또한 사사 시대에 가나안 왕 야빈이 철병거 구백승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처들어 왔을 때 여선지 드보라가 바락을 일으켜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고 너희 왕들아 들아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사5:3)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은 7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이 위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도움을 체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자는 우리 앞에 사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를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살아 가면서 과연 하나님의 사자들을 체험할 기회가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팽생 아무 두려움과 위험 없이 평탄한 길을 산 사람들은 천사에 대한 감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께 창을 열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한 영혼들은 그 길에서 주의 사자를 만났을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종살이를 접고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앞세우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야곱이 자기 딸들을 데리고 집을 떠난 것을 안 라반은 자기 아들들을 앞세워 죽일 듯이 쫓아 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한 야곱은 라반과 미스바 언약을 체결하므로 결국은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형 에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미스바 언약으로 뒤로 물러날 길이 차단된 것입니다.

 

강건너 강이요 산너머 산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 야곱은 행군 길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야곱이 본 하나님의 사자들이 어떤 모습을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야곱은 그 사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 이라 하였습니다. 마하나임이란 두 진영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그 인생의 앞뒤를 지키고 선 여호와의 사자 곧 여호와의 군대를 본 것입니다.

 

나는 작년 여름 정말 도망할 곳이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동생이 사업을 도산을 하고 교회는 재정에 어려워 십여년을 지탱해 온 갈보리채플을 문닫아야할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냥 문을 닫으면 될 형편이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교회 개척시 동생의 이름으로 차용한 은행 채무가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미국 중국 일본으로 방황을 하기도 하고 또 갈보리채플이 임대하고 있는 장소를 처분하려고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은행의 채무 변재 기간 내에 나는 단돈 100만원도 만들지 못하고 두손을 들고 하늘만 처다 보고 있었습니다. 2500만원이란 돈은 내게 있어 하늘보다도 큰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볼 때 천사가 아니라 마른나무 가지와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조차 의지할 수 없는 눈먼 장애인으로서 한쪽 다리마저 절단한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열어 내 앞에 놓인 무덤을 열었습니다. 그때 내가 할 것은 오직 주의 크신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

다윗은 8절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체험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서 주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사람들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계속하여 그는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였습니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경외한다는 말은 그의 살아계심과 임재하심의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내 삶에 임재하여 계심을 의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는 것일까요? 다윗은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도다 하였습니다.

 

먼저 다윗은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물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이로서 생명의 소중함과 평안의 복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먼저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말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길흉화복은 모두 인간의 말로 시작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술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웃을 칭송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죄된 인간은 하나님을 욕하고 이웃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라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하였고 다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를 씌우리라(약3:2) 하였습니다.

 

참으로 혀는 질들일 수 없는 부분입니다. 늘 자신이 한 말들을 생각하며 뉘우치고 회개를 합니다만 또 같은 죄를 범하고 맙니다. 우리가 입으로 주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웃을 저주합니다. 이에 야고보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약3:10) 하였습니다.

 

두번째로 다윗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하였습니다. 악이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말하며 선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또한 화평은 하나님의 평안 가운데 거함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고범죄를 짓지 말라 하였고 선을 보고 행하지 않는 것도 죄니라 하였습니다.

 

인간의 속성은 참으로 기묘합니다. 악한 것은 주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면서도 육체가 즐겨하고 선한 것은 행하고자 하여도 육체가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9) 고백하였습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기도를 말한 것입니다. 기도란 마음의 원통한 것을 주께 고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것을 세상에 쏟아 놓지 않고 오직 주께 아뢰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네번째로 다윗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인내를 요구한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의인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6,38) 하였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주께 책망을 당하면 무엇이 유익하뇨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시니 그 중에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로마군병들은 죄인을 십자가에 단 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다리 뼈를 꺾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군병들이 다가오기 전에 영혼을 거두셨습니다. 그리하여 군병은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러 물과 피를 쏟아 내었습니다. 이 말씀도 성경에 미리하신 말씀을 성취한 것입니다.

 

다섯번째로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복음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를 가리켜 주라 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의 종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권세 안에서 평안의 복을 누립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