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32편)의인의 현주소
(시32:1)“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오늘은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사람들의 축복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기업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풍족한 삶을 구하고 자신이 누린 풍요로움을 자신의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을 소망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그 기업을 물려 받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비단 하늘나라에 속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과 바다에 속한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이 땅과 바다와 그 세상을 사단이 지배하고 있지만 사단은 이미 판결을 받았고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왕이 되어 천년동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물려 받을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또한 그들의 신분과 출신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오늘 우리는 시편 32편부터 34편에서 그 복을 받은 사람들의 신분과 그 자격을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A. 허물에 사함을 받은 자
다윗은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허물의 사함을 얻은 자’라고 칭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복 있는 허물 곧 죄성이 없는 사람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한 것이라 할 때 다윗은 지금 이 땅에 죄 없는 사람은 없음을 전재한 것입니다.
여기서 허물의 사함이란 허물이란 인간의 타고난 죄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기서 ‘허물의 사함을 얻었다’는 말은 아무런 죄의 대가도 치르지 않고 용서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법률적 판결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모두 서로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 안에는 시기와 질투와 증오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남으로부터 죄 속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원죄의 굴레를 타고 난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1,2) 하였으며 다시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5:9)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 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시36:1)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죄로부터 벗어난 의인의 신분적 변화를 설명하여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 자유케 되었다”(롬7:2,3)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허물의 사함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B.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
두 번째로 다윗은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아주 특별한 신학적인 의미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죄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죄가 가리워진 상태를 언급한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라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타고날 때부터 죄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의인이란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년에 한번씩 짐승을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죄를 속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스스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번에 죄를 속한 사람들도 아직 육신 된 죄의 속성을 갖고 있음에도 죄의 가리움을 받아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덮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용서 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C. 마음에 간사가 없는 자
다윗은 2절에서 ‘마음에 간사가 없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의 중심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고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알고 있습니다. 최근 가룟 유다 복음이라는 고문서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가룟 유다가 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자들이 가룟 유다의 행위를 합리화 하기 위해 쓴 이단 문서입니다.
성경은 가룟 유다와 같이 죄 중에서 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죄 속으로 다시 돌아 간 사람들이 받을 고통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향하여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이라’(유1:13) 기록하였습니다.
D. 정죄를 받지 않는 자
네 번째로 다윗은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최종적인 판단을 의미하며 또한 의인의 믿음의 연속성을 뜻한 것입니다. 정죄란 율법적 용어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다’(롬7:7)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 할 때 세상에는 정죄를 판단할 사람도 있을 수 없고 또 정죄의 기준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죄를 정죄하는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다 한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판단되는 판결입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정죄를 받는 일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과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이방들이 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계11:18)라고 기록하였으며 그 후에 있을 심판에 대하여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는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기록하였습니다.
II. 은혜의 방법
A. 죄를 고백케 하심
3절에서 다윗은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음같이 되었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한 사람들 곧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에서 가리움을 받은 복 받은 사람들에게 엎드려서 절을 받으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부모가 금한 일을 하게 되면 죄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입을 다물고 어떻게 해서라도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감추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식의 죄를 보고 덮어 줄 부모는 없습니다. 다윗은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을 회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부하의 아내를 범하여 임신케 하고도 부족하여 그녀의 임신을 남편에게 돌리려 하였으며 끝내는 그 남편을 죽음으로 내어 몰았습니다. 이처럼 죄는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악한 것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이처럼 중한 죄를 짓고서도 묵묵히 모른척하고 지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사람의 양심을 마비시켜 하나님으로부터 격리 시킵니다. 결국 주께서 죄의 고통을 더하기 전까지는 잘못을 회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된 자녀로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다시 죄인 되게 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은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스스로 자복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주 앞에 죄를 고백함에 있어서도 강한 의지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를 고백할 때 조금도 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의 죄를 모르고 계심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양심이 주를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토하도록 역사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돕기 위해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바울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8:20) 하였으며 다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증거하였습니다.
B. 기도의 능력
다윗은 “이를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시간을 잃지 말라고 경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는 아무 값없이 은혜를 따라 죄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었지만 다시는 죄에 얽히지 않기 위해 온전한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복음서에는 성전에 기도하는 두 사람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으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였고 세리는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은 죄인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돌아 갔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의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행위의 의로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우리의 죄는 가리움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살아 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하여 우리는 영원히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의인의 기쁨(7-11)
A. 훈계
다윗은 8절에서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믿음을 지키며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성도들에게 내리시는 주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주에 대한 잘못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판단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의 용서는 단 한번으로 족합니다. 이제 우리는 용서를 받아야 할 죄인이 아니라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 얽히지 않도록 의인의 길을 배워야 하고 주의 훈계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말씀이며 또 보혜사 성령의 은혜인 것입니다.
1. 말의 속성
다윗은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은 너희는 짐승같이 행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말은 달려 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피를 보면 볼수록 멈추지 않고 달려 나아갑니다. 우리의 육체의 속성은 말과 같이 자기의 필요를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달려 나갑니다. 마치 브레이크 끊어진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입에 자갈을 물려 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 행보를 멈추지 않습니다.
2. 나귀의 속성
또한 우리의 육체는 나귀와 같이 나아가지 않으려는 고집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알고서도 나아가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완강히 버티려 합니다. 그러므로 나귀의 입에 굴레를 씌워 두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무엇을 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른 척 하시는 하나님이 야속하여 원망을 하기도 하고 결국은 잘못된 방법까지도 사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합당한 것인지 화가 될 것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한참 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잘 되지 않은 것이 복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말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 나갔다면 나는 실패의 늪에서 흐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악인에게 슬픔이 많으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두를 것이라’ 기록하였습니다.
B. 정직함(8-11)
끝으로 다윗은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인은 허물의 사함과 죄에서 가리움을 받고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덮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한 마음입니다. 또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뻐하며 즐거움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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