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31편)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요나 2007. 2. 26. 10:52

(시편31편)여호와를 사랑하라

 

(시31: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시편 31편은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큰 의무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성경의 가장 큰 메시지로서 주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38)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이 왜 성도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I. 구원의 확신(1-8)

 A.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1)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면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겪어야 하는 인생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은 사실 우리의 무지와 부족함의 소치입니다. 한계 속의 인간이기 때문에 앞의 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윗이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호소한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도 감당 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인간의 고통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왕 된 자로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임신케 하였고 그를 숨기기 위해 남편 된 우리아로 집에 들어가 부인과 동침을 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아가 전쟁 중에 군인이 진중을 벗어날 수 없다 하며 부인과의 동침을 거절하자 다윗은 밧세바의 일이 곧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우리아를 전쟁 선두에 내세워 죽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리하고도 선지자 나단이 그의 죄를 고하기 전까지 자신의 행위를 덮으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죄의 욕망은 우리 몸과 마음 속에 도사리고 앉아 끊임없이 우리의 실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의인된 우리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9,20)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메스컴을 통하여 많은 목사들의 비행 사실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의 고통은 죄의 속성을 가진 모든 의인들의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의로움만이 우리를 죄를 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명적 수치를 언급한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세우신 것은 택하신 주의 백성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고 지키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이 땅에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B.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2)

다윗은 2절에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호소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장이란 적군의 공격을 막는 산성과 요새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대적을 물릴 칠 힘과 능력이 없음을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과신하여 무모한 짓들을 저지르곤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일들은 권력층이나 지식층에 이를수록 더 합니다.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재물과 권세로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손톱 밑에 든 작은 가시로 하여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C. 나를 인도하고 지도하소서

세번째로 다윗은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지도하소서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쳐 달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택하고 부르신 자들의 주권이 주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혜와 지식에 치우쳐 주의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교훈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라 하셨으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하시며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의 왕이심에도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D. 나의 영을 맡아 주소서

계속하여 다윗은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 영이신 하나님께 자기의 영을 의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영적 인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 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그 영이 진리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나오지 않는 것은 이 세상 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하였으며 다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박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9b) 하였습니다.

 

II. 의인의 고통(9-18)

 이제 다윗은 그가 죄 가운데 받은 고통들을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먼저 생명의 슬픔을 호소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살고 있음이 지옥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또 인생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아마 인생의 아품을 겪은 사람들은 생명의 슬픔이란 말의 뜻을 십분 이해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그 생명의 슬픔 속에 나타난 일들을 서술하여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는 심히 당하나 내 친구가 노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아마 이 이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의 고통을 서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욥기에서 저주받은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비참하며 또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가를 익히 알 수 있습니다. 욥이 의인이란 이유로 사단에게 핍박을 당할 때에 그의 아들들과 재산을 몰수 당하고 온몸에 악창이 나 생명부지에 앉아 울부짖었습니다. 이때 그의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저주하라 하며 떠나 버렸고 욥의 친구들까지도 그의 의로움을 조롱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때의 고통을 말하여 네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어진 그릇과 같으니이다(12)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안타깝게 구원을 외쳤을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호소와 부르짖음은 허공에 가를 뿐이었습니다.

 

나는 과거 생명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저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 혼백이 나의 영혼의 생명을 찾고자 울부짖어도 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하나님 속에서 잊혀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14절에서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이 얼마나 애처러운 사랑의 고백입니까? 우리가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주기란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끊겨 나의 존재가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잊혀버린 상황에서 주 여호와를 의지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라 고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의 주권자가 주 여호와 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고백하였으며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오직 구원을 주의 택하심과 주의 인자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택하신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III. 영원한 은혜의 사모 (19-24)

 

또한 다윗은 의인을 향하신 주의 은혜를 확신하면서 주께서 그 부르신 자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시고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하신 장막에 감추어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실 것을 믿고 견고한 성에서 인자하심을 내시는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내가 경겁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 가운데 고통을 만나면 하나님에게서 끊어져 나간 사람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친구들이 떠나고 무리들의 비방을 받기도 합니다. 더 이상 생명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자기의 인생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 여호와 하나님은 택하신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구원의 손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주께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땅의 모든 성도들 향하여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상심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권면하며 여호와를 바라는 성도들을 행하여 강하고 담대하라 하였습니다. 이제 극한 고통 속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구원의 주를 향하여 부르짖읍시다. 주께서 속히 그의 얼굴을 보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