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1편)복 있는 사람의 길

이요나 2007. 2. 26. 11:13

(시편1편)복 있는 사람의 길

 

(시편1: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은 유대인의 찬송가 모음입니다. 그들은 예배 때마다 다윗의 시를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삶 그 자체가 예배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잠에서 일어나는 순간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바라는 믿음의 표상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시라 할 때 어떤 음률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미로운 음률에 맞추어야만 그 시의 운치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시들은 우리나라의 시조처럼 어떤 음률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음률에 맞추어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한 아름다운 진보, 다시 말하여 하나님을 향한 미래 지형적인 세계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마음의 음률을 따라 영혼으로부터 솟아 오르는 믿음의 찬송이며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나타난 하나님의 화답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의 시의 특성은 상징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징 언어 속에 담긴 그림들을 발견하여 그 시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특성을 우리에게 합리적으로 도달하게 하기 위해 세가지 병행법의 형식을 갖고 있는데 한 가지 개념을 유사한 방법으로 반복하여 표현하는 유사성 병행법과 시편 1편과 같이 각 구절마다 발전된 다른 생각을 첨가하여 의미를 더하는 종합적 병행법 그리고 서로 다른 사상을 대비시키는 대조적 병행법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150편으로 구성된 시편은 크게 다섯권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제1권은 1편부터 41편까지이고 제2권은 42편부터 72편까지이며, 제 삼권은 73편부터 89편, 제4권은 90편부터 106편, 제5권은 107편부터 150편까지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 권이 끝을 맺을 때마다 아멘 아멘 또는 아멘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한 주에 몇 편씩을 나누어 영혼의 찬송 속으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편 제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정의로 시작된다. 여기서 복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내려주신 영과 혼과 육의 복, 다시 말하여 영혼의 평안과 삶의 번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바라는 소망으로 이를 위하여 인간은 끊임없는 투쟁을 하게 된다.

 

복의 근원은 창조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출발된 것으로 인간은 그의 창조하신 때로부터 충만한 복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아담이 뱀의 유혹을 받아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므로 하여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제한된 복을 받기에 이르렀다. 

 

I. 부정적인 것 세가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1)

 

흥미롭게도 시편 기자는 먼저 복 있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것 3가지를 언급하였다.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긍정적인 것일 먼저 거론하여야 하는데 부정적인 것을 먼저 언급하는 것은 이미 죄의 속성에 빠진 인간으로 해야 할 것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먼저 복 있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세 부류의 대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은 먼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라 하였다. 악인이란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그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악인은 늘 다른 사람들을 유혹할 간교한 꾀를 만들어 낸다.

 

두번째 등장한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이란 죄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길이 있어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죄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 간다. 세상에는 음행과 마약과 술과 도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죄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세번째로 경계해야 할 사람은 오만한 자이다. 오만한 자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자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시기하며 존경을 받으려 하고 있다. 주님은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막12:39) 하셨다.

 

흥미롭게도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일들은 모두 진행형 동사로 구성되었으며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여 악인의 꾀를 좇게 되면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종국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보적 성형을 갖고 있으며 또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진보와 개혁은 인간을 향상시키는 이상적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의 출발 구심점에 무엇이 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II. 긍정적인 것 두 가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의 두 가지 긍정적인 것을 말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과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여 먼저는 여호와 곧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책망하심을 즐거워하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그 말씀을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나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나는 밤낮으로 그 여인을 생각하여 그녀에게 무엇을 해 줄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만약 술을 좋아한다면 그는 밤낮 술 먹을 구실만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 속에 죄의 속성이 살아 있어 죄를 책망하고 죽음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율법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임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하였고 다시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여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나를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도다(롬7:18-23) 기록하였다. 그러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율법 속에서 생활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교회 언어로 하면 성경적 생활을 뜻한다.

 

III. 악인과 의인의 결과

3절에서 시편기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였다. 이것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와 시냇물의 필연적인 관계를 비유한 것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필연적인 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A. 형통의 길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수1:7) 하였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마음과 담대함으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하셨다. 다시 말하여 율법을 지키기 위한 강한 마음과 담대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킴으로 모든 일에 형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우리 육체가 스스로 거부하는 율법을 즐거워하며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성경책을 주야로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데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말씀이 육신 되셨다는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창조자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야로 그의 말씀을 읽으며 주야로 그 말씀을 깨닫고자 묵상을 할 때 그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B. 멸망의 길

시편 기자는 악인의 생활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것이라 하였다. 이것은 그가 행한 결과가 남지 않을 것을 뜻한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육신을 좇아 사는 사람들의 결말을 보아 왔다. 그들은 인생을 도박처럼 여겨 악을 일삼으며 불의로 재물을 모으나 그들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의 결말이 겨와 같이 바람에 날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의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들어 갈 때에 그들은 영원한 심판 속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 하나님의 길을 떠나 악인의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구약강해 > 시편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2:6) 메시아를 아는 복  (0) 2007.02.26
(시편3:3) 구원의 복  (0) 2007.02.26
(시편4:3) 택하심의 복  (0) 2007.02.26
(시편5:12)의인의 복  (0) 2007.02.26
(시편6-9편)영혼의 찬양  (0) 200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