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전2:4)하나님의 목회관

이요나 2007. 2. 27. 12:15

(딤전2:4)하나님의 목회관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은 디모데전서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어제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은 기쁘기만 합니다만 오십이 훨신넘은 내 나이는 여러가지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올 겨울을 잘 나야 할텐데 아무도 병들지 말고 추워서 떨지말고...이제 나도 늙었나 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 그리고 바울이 데모데에게 특별한 편지를 남긴 이유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만약  이 편지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진리 부재의 혼돈 속에서 목회를 하여야 하는 우리가 과연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믿음과 양심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깨달을 수 있는
 통로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라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5) 증거하였습니다.

어쩌면 신약의 또 하나의 주제는 선한 양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하였습니다. 요즘과 같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배반과 배신을 밥 먹듯하는 세상에서 양심은
 자신을 지키는 거대한 힘이라 하겠습니다.

 A. 목회자의 경건생활
바울은 2장에서 믿음과 찬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의 믿음 생활의 규범을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고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간구, 기도, 도고, 감사 이 네가지는 모두 기도의 영역 속에 속한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에 대하여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기도는 자신의 기도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며 너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셨다 하셨습니다.

  1. 간구(request)
바울이 첫번째로 언급한
 
'간구'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조금 다릅니다. 이 말은 헬라어 '데시스'(deesis)로서 영어 'request'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엄격히 말하여 필요에 대한 '요구'를 나타내는 말로서 종교적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늦게 찾아 온 친구를 위해서 이웃에게 빵을 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친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 체면을 무릅쓰고 옆집으로 가서
 친구의 갈급한 문제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간구'란  연약한 인간의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하나님과 또한 인간 상호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기도(Pray)
바울이 말한 두번째의 ' 기도'(Pray)는 헬라어 '프로슈케'(proseuche)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간구'와 또 다른 의미입니다. '간구'는 인간과 하나님 앞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지만 '기도'(Pray)는 그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다시말하여 이것은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3. 도고(중보기도) 
세번째 언급된
 '도고'는 헬라어 '엔튝시스'(enteuxis)는 우리말의 '애원' 또는 '청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원래 이 말은 '어떤 사람과 만나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라는 의미에서 출발된 말로서 임금이나 높은 지위에 해당한 사람 앞에 나아가 청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과부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하셨습니다.

 
4. 감사기도(Thanksgiving)
네번째 언급된 '감사'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로서 영어 'thanksgiving'에 해당되는 말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의 생활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주께 아뢰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알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그대로 상달되고 응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B.
 교회와 하나님의 뜻
  1.위정자를 위한 기도
2절에서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이 이글을 쓰던 그당시를 돌아 볼 때 사실 복음의 사역자들은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박해했었습니다. 네로황제는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정치적 제물로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실로
  혼미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우리는 여러가지 제시된 국가정책들로 하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집단으로 그들의 정책에 반대하고 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 일각에서는 교회의 부정적인 시각이 노골적으로 들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창설된 이래 우리는 자랑스런 위정자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것은
 국가 위정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건 안믿건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축복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국처럼 교회가 부흥하고 기도원마다 기도가 넘쳐나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과연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들인가 할 정도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칭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새로운 종교집단으로 이단시하던 초대교회에서도 이방교회의 전초지
 안디옥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붉은 띠를 두르고 시청 앞 광장에 떼거지로 몰려가 정부를 타도하듯이 시위를
  하여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것입니다. 만약 그럴 것이였다면 1년전 현 정권의 수뇌부를 선택한 자신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얼마전 위정자의 탄액이 시도되었을 때 박수를쳤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영으로 깨어 있었다면 오늘의 현실을 미리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권세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악을 쓰며 그들과 맞서려는 움직임은 과연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요? 성경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이 용서와 사랑의 근본이시며
 
만군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적 섭리인 것입니다.

  2.권세의 주권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하였으며 다시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 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롬13:4)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모두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우리의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며 오직 진리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와 위정자들의 바른 양심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노를 인하여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하였습니다.

C. 믿음생활 질서(5-15)

  1. 사도를 세우심
 바울은 주께서 자신들을 세우심에 대하여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이방인 가운데 온전한 복음 전파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법과 윤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남자의 거룩한 기도
8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말씀은 우리나라 교회가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특성을 들라하면 여인들의 세상이라는 것과 남자들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나 봉사나 성경공부는 여인들의 몫이되고 남자들은 교회주권 쟁취에 혈안이 되있기 일수입니다.

  3.여자들의 삶
9절에는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정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담한'이란 말은 질서에서 파생된 말이며 염치는 창피스러움을 아는 정숙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오랜세월 동경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내가 다니던 동경의 교회는 70%가 여성들로 구성되었는데 주일이면 흡사
 팻션쇼를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어쩌다 서울에서 귀한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화라도 갖게되면 무대나 유흥장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치장과 보석을 감은 여인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바울이 이방교회에 이러한 말을 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말하며 "여자들은 일절 순종하므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교회에서 여자에 대하여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볼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특히 여목사 제도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한국적인 실정에서 이 말씀은 듣기 거북한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교회의
 제도와 치리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가정을 남편을 제처두고 여자가 앞에 서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영적원리와 질서
바울은 여인들이 교회에서 앞장서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과 남녀의 질서와 영적인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후 아담에게 그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돕는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유혹을 받아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고 그로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편을 사모하며 아이를 낳으라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로부터
 인간의 삶을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통치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서의 여자들의 활동을 제안한 것은 여자들의 성품이 정적이어서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 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여자들을 향하여 정절과 믿음과 거룩함에 거하여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라 하였습니다.

저는 매년 미국 갈보리채플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마다 남자들로 가득하고 모든 예배와 활동이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여자 목사가 없는 것도 특이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여성 지도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여성들이 조용한 모습으로
 봉사와 성경 가르치는 일에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순과 아집에서 벗어나 주를 믿는 믿음이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