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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5:5) 하나님을 본받는 자

이요나 2007. 2. 28. 10:21

(에베소서5:5) 하나님을 본받는 자

 

(엡5:5) 너희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우리는 앞에서 우리 교회를 위한 주신 그리스도의 선물과 그 목적 그리고 속히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할 이방인의 속성들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후속적인 방법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들에 대하여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1절에서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의 삶의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제물은 신에게 어떤 일을 위하여 드리는 종교적 행위이며 생축은 살아 있는 생물을 제물로 드린 희생을 언급한 것입니다. 여기서 향기롭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합당히 기뻐 받으심을 나타낸 것으로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언급하며 우리가 삶의 생활 속에서 행할 일들이 마치 제물과 생축을 드림과 같이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의 속성

바울은 제일 먼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말하였습니다.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투쟁적 발언은 음행과 탐욕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누추함'이란 상스러운 외설들을 말하는 것이며 희롱은 진실이 제외던 요사스런 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방인 성도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이방인의 속성과 습관들에 익숙하여 크리스챤의 생활에 익숙지 못한 성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로서 더이상 물러 서지 못한 한가지 진실을 다시 언급하게 됩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에서도 언급된 말씀으로 바울서신에 중심을 이루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갈보리채플에 들어오기전 어느 교회 설교에서도 이 문제를 냉철하게 언급하는 설교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내가 섬기던 동경의 모교회는 이런 일이 교회 전체에 깔려 있어 심지어 사역자들까지도 성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부분을 가르치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갈보리채플 사역자가자 되어 성경 전체를 조명하면서 나는 늘 이와 같은 말씀을 심도있게 다루게 되는데 아직 이러한 문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은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말씀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이 약을 싫어하고 주사를 기피한다면 그는 그 병을 결국 죽게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가 세우고 가르친 자식과 같은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입니다. 바울의 사도된 임무는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계시를 가르켜 그들로 모두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물려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속성 중 음행에 대하여 가장 강하게 다루고 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음행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악한 일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탐심을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경계하신 물질주의와 함께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바 음행이나 더러운 것이나 탐심은 세상의 신이 인간을 다스리는 속성에 속한 영적인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6절에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 당시 이방시대를 혼란시키고 있던 그노시스 사상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세상을 악과 선으로 구분하여 물질과 영을 구분하여 물질은 악하고 영은 거룩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결국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무두 악한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육체로 왔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불순종의 아들이라는 바울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상은 욥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단이 함께 서있는 부분 속에서 우리는 우리 교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헛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한 것입니다.

 

빛의 자녀의 속성

이제 바울은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여야 할 일들을 언급하여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절)하였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또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빛의 자녀인 것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빛의 자녀들에게 나타날 '열매'를 말하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빛의 자녀라 하면서 그에게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빛의 자녀로서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11절에서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책망하지 않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주의 은혜와 용서라는 말로 위장하여 성도의 범죄를 보고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형제가 범죄하며 경계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경계란 책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범죄에 대하여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하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읽으며 가슴에 뜨끔거릴 것은 없는지요? 우리 가운데 은밀히 행하는 부끄러움이 있어서는 결단코 않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시 13절에서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책망을 받고 회개하여 빛 가운데 나오는 자들의 위로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위로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15절부터 바울은 성도들의 지혜로운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먼저 언급된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만큼 세상과 우리 육체는 우리의 범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의 첫번째 방법은 세월을 아끼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주의 날이 임박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관대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차차 나아지겠지하는 말로 위로하기 십상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뜻은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영적 무지를 의미한 것으로, 자기를 스스로 방탕한 곳에 내어버려 둔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결코 그는 그 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된 품성으로 그의 임재하신 곳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로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거룩하여야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술취하지 말라는 비단 술 뿐이 아니라 우리를 취하게 하는 세상의 모든 속성들로 해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골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프로그램에 취해버린 것 모두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술취함과 성령의 충만을 대비하여 놓았습니다. 아마 성령의 충만함의 상태는 마치 우리가 술취한 모습처럼 오직 하나님의 일에 흥취하여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의 방법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하였습니다.

 

여기서 시는 시편을 말하는 것으로 그 당시는 신약이 써내려 가는 때이였음으로 일상 생활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은 시편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입니다. 또한 찬미와 신령한 노래란 성도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요즘에는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기 쉬운 세상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찬양곡은 오히려 너무 억지로 경건함을 주장하여 젊은이들의 마음을 흡족히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정말 말씀과 성령으로 기름부은 찬양 사역자들이 일어나야겠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였습니다. 최근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자신을 들어 내는 일에 치중한 나머지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잃으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 발생된 서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입니다. 그 당시 니골라 당이 생겨서 교회에 계급을 만들어 결국 성도와 주님 사이에 중재자를 두려 하였습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는 그러한 계급의 속성이 만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온전한 결혼생활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부부생활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가정입니다. 바울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아내를 먼저 거론한 것은 종말의 시대에 나타날 여권신장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여권신장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오히려 그 도를 넘어서 여성의 범주를 지나치게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25졸에서 남편들의 지극한 아내 사랑을 피력하여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섬김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남자들은 너무 우월주의에 빠져 있어 아내들을 마치 종부리듯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섬기려 오셨다 하셨습니다.

 

바울은 부부가 서로 이처럼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28절에서 다시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남편들의 아내 사랑을 언급하면서 말씀과 거룩함과 흠과 점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를 언급한 것은 남자들의 이기주의적인 속성과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속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29절에서 "누구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이웃을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하라는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양육'과 '보호'는 지극한 정성으로 섬김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끝으로 교회의 비밀을 언급하여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과 땅을 창설하신 후 인간을 지으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이유는 둘이 한 몸을 이루어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 악이 침범치 못하게 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는 33절에서 또 다시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여 권면하는 이유는 부부의 사랑이 그처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는 남편 사랑받는 아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