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에베소서강해

(에베소서4:30) 성도의 심령의 변화

이요나 2007. 2. 28. 10:24

(에베소서4:30) 성도의 심령의 변화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벗어나야 할 속성들

바울은 앞에서 우리 교회의 온전한 지식과 영적 성장을 위하여 부르신 자들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아직 그리스도의 충만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일깨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이니 곧 그리스도라"(엡4:15)권면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17절에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즉 하나님의 성도들의 다른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속성이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앓고 있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17절에서 "이제 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17절)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붙잡힘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된 성도들에게 다시 이 말은 하는 것은 아직도 교회 속에 이방인의 허망한 것들이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먼저 이방인의 허망한 것들의 특성에 대하여 "총명이 어두어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하였습니다. 여기서 총명이란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말하며 '무지'는 지식의 부재를 의미하며 '굳어짐'은 양심이 마비된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교회 중에서 아직 깨닫지 못한 지식들을 내세워 극단적인 논쟁을 일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던지 그들은 아직 무지한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문 자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생태에 대하여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일에 감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느낄 수 있는 감각 기관과 자각할 수 이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에 얽매이면 이성이 마비되어 마치 짐승과 같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더우기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게 된다'는 말씀은 정말 두러운 말입니다. 이것은 절제의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잃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저희의 마음의 정욕대로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롬1:21)증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은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처럼 방탕함에 스스로 방임하여 모든 더러움에 얽힌 것은 그들의 마음이 허망한 것에 사로잡혀 총명을 잃은 것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여야 할 것들

20절에서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인품과 인격과 그의 모든 것을 우리 앞에 세웠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초보적인 지식으로 그의 거룩함과 성결하심과 온전하심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우리를 각성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에게서 듣고 그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죽음 앞에서 제자들을 악으로부터 보전되기를 기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히 하옵서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간구하셨습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유혹의 욕심'이란 말씀입니다. 유혹은 무엇으로부터 이끌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 을 언급하며 우리 가운데 남아 있는 습관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담배를 끊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술이나 음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심령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애통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신은 우리의 실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먼저 '심령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령의 변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아주 간단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언급하였습니다. 의란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거룩함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모하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심령은 날마다 새롭게 될 것이며 우리는 새사람으로 지음을 받을 것입니다.

 

성도가 버려야 할 것들

이제 바울은 성도로서 마땅히 우리 삶 가운데서 버려야할 것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거짓된 것을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자신의 거짓된 것을 감추기 위해 서로 참된 것을 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체란 서로의 모든 것을 밝히 알고 그 고통을 위하여 기도하고 권면하고 보호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부부간에 서로 진실치 못하고 거짓을 말한다면 그 부부는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체와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두번째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8)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 가운데 분노할 일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이란 원래 나의 생각과 다를 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분냄이 있음을 인정하며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노의 다음 단계는 죄와 관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속임을 당하면 분하여 곧 보복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그러한 분노의 외적 속성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서 쉽게 없어지지 않는 분노의 내적 속성을 언급한 것으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우리 안에 쌓인 분노는 마귀로 기회를 갖게하는 것입니다. 저는 갈보리채플 사역을 하면서 많은 분노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속에는 얼마나 많은 분노가 쌓였는지 나를 비방하던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분노가 폭발하여 바로 상대를 공격하고 또 그 분노로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 가서는 성도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었던 일들이 있습니다. 제 안에 쌓인 분노는 어려서부터 쌓인 잠재적 분노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벗어버리지 못한 구습이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28절에서 다시 도적질을 하지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도적질이란 일하지 않음으로 발생된 합의된 도적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도적질 하지 말라는 네가 성전의 것을 훔치는도다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으로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경계하였습니다. 요즘 목사들의 모임에 가면 지나치도록 욕설 입에 담고 어떤 목사들은 강단에서도 더러운 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우리 생활에서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선한 말이 익숙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근심하시는 것들

끝으로 바울은 성령은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로서 성령은 어떤 사물이나 물체가 아니라 인격을 갖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더러운 말들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근심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로므로 바울은 성령이 근심하지 않기 위하여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나는 전에는 '서로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잘못된 모든 속성들을 인내와 절제로서 참아내고 서로 인자하게 하는 일은 정말 불쌍히 여김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자하심을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으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허락하여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없어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셨습니다.

 

나는 최근 이 문제를 놓고 많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용서함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옹졸함은 정말 속히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