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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10) 교회의 지혜

이요나 2007. 2. 28. 10:27

(에베소서3:10) 교회의 지혜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앞에서 또 다른 십자가의 구속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의미를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것 외에 이 땅에 하나님의 평강을 이루기 위해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이방의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다 함께 한 성령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2장 끝에서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 가느니라" 하였습니다.

 

계시의 비밀

이제 바울은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처소인 교회의 목적과 그를 위하여 갖추어야 할 교회의 조건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3장 서두에서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자 된 나 바울은.." 이라고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서법은 14절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4장과 5장 서두도 모두 '그러므로'라는 종결형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장과 4장과 5장은 모두 2장을 토대로 하여 부연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2절로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닭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경륜'(오이코노미아)이란 통치와 경영을 위한 주권자의 섭리를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기 위한 경륜을 주신 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 은혜는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님의 생전에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열열한 율법학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생전에 그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마치 하나님의 비밀을 눈으로 본 것 같이 주옥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계시'란 베일을 벗긴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경륜 속에 감추어진 복음의 비밀로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때에 주께서 친히 부르신 종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5절에서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라도 오직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많은 거짓교사들이 등장하여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받은 것처럼 떠들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계시가 아니고 높아진 마음 속에 역사하는 영들을 따라 말하는 복술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어 이미 교회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언급한 계시의 비밀은 어떤 새로운 사실의 나타남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심 가운데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경륜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계시는 아직도 우리 교회 가운데 역사하여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하나씩 성취되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경륜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

계속하여 바울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함께'라는 단어를 3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들과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는 정말 모욕적인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글 속에는 이방교회에 역사하는 유대인의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 복음을 위하여'이제 바울 사도는 7절에서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말하여 복음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약속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비밀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이방인 사도된 직무와 그를 통하여 세우신 교회로 하여 나타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8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역활 즉 교회의 첫번째 직무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9절)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하나님 경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통하여 창조자 하나님 가운데 감추어진 하나님의 통치적 섭리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함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10절)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하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2:6)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언급한 '정사와 권세들'은 이 땅의 모든 질서와 지배 가운데 역사하는 통지권세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 이 세상을 주도해나가게 하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교회의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려 주기는 커녕 정치와 권력의 시녀가 되어 이리 휘말리고 저리 휘말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선지자의 기름부음과 왕의 기름부음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로 하여 통치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신정국가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방의 위협과 위엄에 눌려 왕을 요구하였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왕에게 기름을 부어 영과 혼의 일체를 도모하였습니다.

 

스가랴서에는 제사장 여호수와와 유다 총독 스룹바벨로 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순으로 삼으시고 스룹바벨을 인(印)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둘 사이에 일곱등잔을 켠 금촛대가 금기름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충만

위대한 교회의 비밀을 언급한 바울은 이제 근심에 쌓인 교회를 권면하여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12,13절)하였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이방교회들의 근심은 바울이 당하는 고난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바울의 갇힘을 빙자하여 바울의 사도됨을 비난하기에 이르렀습니다(빌1:17).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10년 동안 나와 함께 갈보리채플 사역에 인내해 온 성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차마 그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어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 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로 갚을 것이라"(슥9:12)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비록 갇힌 자들처럼 눌림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늘로 좇아 온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향하여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자"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풍성함

이제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서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비노니"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옥중의 갇힌 바울의 모습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은 지금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이라 지칭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이승과 오는 세상을 초월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문맥을 함께 생각해 볼 때 어쩌면 이것은 이미 하늘에 이른 교회와 아직 하늘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모두 지칭한 것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온전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우리는 아직 바울이 말하는 바 '영광의 풍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을 말하여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고 회상하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바울 여기서 우리의 속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강건함을 타나내려는 일과는 상반된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앞날을 말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천사는 스가랴에게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고 전했습니다. 주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이르러 애타게 간구하는 교회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에 임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지식

바울의 두번째 기원은 성도의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앞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요13:34)하시며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요14:1) 하셨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절)기도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오늘날 우리 교회를 바라 볼 때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무지몽매함을 조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성경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미혹된 심령에 이끌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농락을 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게 하신 것은 오직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국 우리의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세세토록 계실 것을 기원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충만하게 하신 성령의 능력이 우리와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지식에 이르는 것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