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에베소서강해

(에베소서1:21) 만물의 충만

이요나 2007. 2. 28. 10:31

(에베소서1:21) 만물의 충만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택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의 정의와 그것을 주신 이유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잘 먹고 잘입고 희희낙락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그리스도의 구속하심과 기업이 되게하신 주의 영광을 찬송하고 더 나아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심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인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15절에서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인하여'라는 말로 시작된 15절이하는 189개의 단어로 이어진 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이미 살펴 보았듯이 바울은 3년동안 유대인들의 극심한 훼방 가운데 눈물로서 에베소 제자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제 옥중에서 에베소 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실천을 듣는 바울의 마음은 감개가 무량하였을 것입니다.

 

A. 바울의 칭찬의 의도

바울은 15절과 16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믿음과 삶 가운데 나타난 성도의 사랑을 칭찬하였습니다. 자기의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인하여'라는 접속사는 그들 가운데 나타난 믿음과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문체는 각 교회에 보내는 바울 서신 서두문 전체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쓸 때마다 현실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삶 가운데 나타난 사랑의 실천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신의 문맥을 면밀히 살펴볼때 바울은 각 교회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떠나면서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하며 다시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절)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는 말씀 속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특별한 의도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1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사도적 입지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부족한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B. 지혜와 계시의 정신

바울은 1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노심초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가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혜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임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11:2)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여기서 그들에게 지혜의 영이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8절에서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리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신령한 복에 속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처럼 바울을 노심초사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마음의 눈

바울은 18절에서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함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기를 구하노라" 기원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세밀하게 분석하면 에베소 교회가 아직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네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이 마음의 눈이 밝지 않다는 것이며, 둘째로 부르심의 소망을 알지 못한 것이며, 세째로 성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지 못한 것이며, 네째로 그들에게 나타난 능력의 크심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하시며,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을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22절)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보는 것과 마음의 관심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히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의 세상을 향한 잘못된 관심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은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며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계3:18)하셨습니다.

 

--->2. 부르심의 소망

두번째로 바울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배웠듯이 그리스도인에게 본질적으로 항상 있어야 할 하나님의 은사 중에 은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말하면서 사실 이것들을 바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에 비하여 '소망'에 대하여는 그 지식이 매우 둔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의 범위가 현실 속에서 보고 터득한 지식을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로 말할 때 믿음과 사랑은 현실에 속한 것이지만 부르심의 소망은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은 계시된 말씀과 오직 지혜의 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세번째로 바울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된 부르심의 소망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기업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장차 나타날 영광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 또한 계시된 말씀과 지혜의 영으로만 알 수 있는 하늘에 속한 지식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언급하면서 '영광의 아버지'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관련하여 에베소 교회의 모순된 상태를 은연 중에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으로 그의 임재하심 가운데 나타난 그 모든 영화로운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땅 메소포타미아에서 영광의 하나님을 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부르신 자들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모든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어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하게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영광을 사람과 나누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4. 베푸신 능력의 크심

바울이 지적한 네번째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모르는 것' 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오늘날 우리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방언과 예언을 하므로 하루에 3천명의 제자들을 더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러한 일들은 오히려 이단시 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나타난 능력을 말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강력한 힘'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기록으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어갈 때 죽은 자를 살리시는 막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막강한 능력에 대하여 의심을 하며 역사로 치부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눈에 보이는 소망만을 바라는 조급한 마음과 그리스도안에 예정된 계시의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세대를 살지 못하는 육체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그의 세계는 시작과 끝이 없는 지존자의 세계입니다. 성경은 모든 육체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음과 장차 그의 나타나실 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3,24)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 있는 것이며 그를 살리신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이미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계시된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전15:25,25)기록하였습니다.

 

C. 그리스도의 권세

20절에서 바울 사도는 다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20-22절)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살아 나신 주께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이 세상과 또 오는 세상의 통치자로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볼 수 있는 지식들입니다. 우리가 이 지식을 갖고 있다면 오늘 우리가 당하는 세상의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는 그의 지체요 우리의 머리는 만물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말한 바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말씀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은 그 발 아래 복종하지 않고 그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록에서 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교회의 머리가 되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자들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뿐만이 아니라 오는 세상의 모든 이름 위에 계신 분이신 것을 기억하여야 하며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라는 말씀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D. 그리스도의 충만과 교회

바울 사도는 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란 여러 가지 해석이 따르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리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알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하였습니다. 따라서 '충만'이란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피조물은 오직 그의 은혜가운데서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울 사도가 교회를 그의 몸이라 하였고 그리스도를 머리라 하였기 때문에 어떤 주석자들은 몸이 머리를 충만케 하는 것이지 머리가 몸을 충만 시키지는 못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머리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이므로 머리와 몸은 서로 뗄 수 없는 오직 하나의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하나임을 강조한 것으로 만물의 충만함은 만물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교회로 말미암을 것임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롬7:22)하였고 다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라'(롬8:19)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거룩한 성도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그의 성도들과 이 땅에 오셔서 만물을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을 증거하며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7-21 참조) 하였습니다.

 

또 유다는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유1:17)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들이 받아 기록한 계시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당신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