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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2:14)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삶

이요나 2007. 3. 2. 16:08

(사도행전22:14) 하나님의 뜻을 아는

 

(행22: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바울은 지금 아시아와 유럽선교를 마치고 생명의 위협을 예고하는 성령의 예언을 무릅쓰고 오직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때는 주의 부르심을 받은 20년이 시점이 된다.

 

결국 바울은 성령이 미리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시아에서 올라 온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율법을 훼방하며 이방인을 거룩한 성전에 들여 성전을 더럽힌 이단자로 몰려 백성들에게 끌려 죽음을 당할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행21:26-30).

 

이 일로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나자 경비를 맡은 천부장이 군대를 동원하여 사태를 진압하기에 이르러 흥분한 백성들의 소요를 진정시킨 후 바울의 안전을 위해 군영으로 데리고 가게 하였다.

 

이때 바울이 천부장에게 청원을 하자 그리스말을 하는 바울을 기이히 여겨 그의 출신을 묻자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대도시 다소 성의 시민이니 나로 하여 백성들에게 증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바울은 영문 밖 충대 위에 서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회심의 사건을 다시 증언하게 되었다.

 

I. 초대교회의 문제점

 A. 하나님에 대한 열정

오늘 오순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과 유대인들간의 충돌의 원인은 초대교회의 문제점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고유종교인 유대교나 새롭게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교도들이 유일신 하나님과 그에 대한 지식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여 동일한 하나님 안에 서로 다른 교리의 벽을 쌓고 서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하여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의 초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음을 강조하며 동족의 구원을 향해 불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이 초대교회에서 더욱 강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혼의 구원이 율법으로 말미암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느냐는 중대한 교리적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은혜의 복음을 따르자면 자신들이 속한 율법의 교리와 그 안에서 쌓은 모든 권세들을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내려 놓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 유대인들조차도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교리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성령의 만류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야 했던 이유인 것이다.

바울은 19절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신이 동족의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주께서 나타나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18) 하셨을 때에도 그는 주여 내가 두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인 자들의 결백함을 증거 한 것을 저희도 압니다(19,20) 라고 강변하였다.

 

동족을 향한 바울의 열정은 로마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로마서 10장에서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말하며 유대인들의 잘못된 믿음의 열정을 언급하며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롬10:1-3) 증거하였다. 이것은 바울의 체험을 통한 은혜의 깨달음이라도 하겠다.

 

  B.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증언

흥미롭게도 성경에는 바울의 회심한 사건에 대한 동일한 내용들이 반복되어 소개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고 말씀하신다하신 말씀과 같이 성경에 같은 내용이 반복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회심에 관한 증거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다른 유대인보다 율법에 열심이 있어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공문을 받아 가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사실을 증거하였다. 이것은 바울의 회심의 직접적인 동기로 자신의 믿음의 출발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증거한 것이다. 이것은   땅에 부름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증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의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없으면 누구도 가까이 없음을 증거한다.

 

바울의 두번째 증거는 사도로 세우심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주의 지시를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경건한 주의 제자 아니니아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께서 세우신 사람에게 나아간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만나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안수를 받아 성령 충만함을 얻고 치유함을 체험한 , 침례를 받음으로 명실공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오늘 이와 같은 바울의 증언은 복음전도를 위한 택하심을 받은 우리에게 성령세례의 중요성과 함께 침례의 필연성을 전하고 있다. ( 내용은 한국교회들이 재삼 숙고해야 문제이기도 하다)

 

바울의 전하는 세번째 증거는 주의 세우심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믿음의 경륜에 관한 증언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의인의 보게 하시고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다”(14) 증거하였다. 부분 또한 우리 제자 모든 사역자들이 조심스럽게 살펴 보고 자신을 돌아 보아야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부르심과 성령의 세례로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는가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가 예수를 만났지만 그는 잠시 순간에 만난 것뿐으로 다른 제자들과 같이 주와 함께 생활을 것도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알게 하기 위해 의인을 보게 하시고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다증언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적 임무를 언급하며 사람들에게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되었다’(1:1) 증거하였으며 다시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속에서 나타내시기를 기뻐 때에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갔다”(1:16,17) 증거하였다.

 

내용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 바와 같이 사도로 부름을 받은 아라비아로 내려가 3년을 거하였으며 다시 다메섹에서 다소에 이르러 7년을 거하였다. 그후 바울은 안디옥 교회를 개척한 바나바의 초청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공식적인 봉사를 하게 되었다(9:25, 11:25). 이와 같이 바울은 10 동안을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독대를 하여 왔던 것이다.

 

후일 바울은 일을 언급하여 그후 3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십오일을 유할새 오직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1:18,19) 기록하였으며 다시 십사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2:1) 증거하였다. 모든 증언들은 자신의 사도됨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의 깨달음과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것이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님을 확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자신의 뜻을 어떻게 알게 하셨으며 주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는가에 대한 성경적 고찰이다. 나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주의 사도로의 택하심과,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은 오직 성령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의 기도를 통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후일 바울은 자기를 통해 나타난 모든 복음의 역사를 가리켜 믿음의 경륜이라 증거하였다.  

 

II.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다.

 A. 우리 조상의 하나님

바울은 자신의 회심의 과정을 고백하여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증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출애굽기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불러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을 , 모세가 백성들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누가 너를 보냈느냐 물으면 그들에게 내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물으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말할 때 어느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모두 각 민족과 나라별로 그들의 신 곧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고 신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들보다도 훨씬 현실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신론자로 넘겨버리려고 한다. 그러나신을 무신론자라고 치부하는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무식한 자로 자처하는 것이며 사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무신론자는 없다. 다만 그들이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나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일 뿐 실상 그는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엘로힘)은 복수형 단일명사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통치적 지위를 말한 것으로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열정적 지위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어떤 열정에 의해 지배되는데 열정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당신의 신이다. 다시 말하여 당신이 섹스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섹스는 당신의 신이며 재물과 명예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재물은 당신의 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열정적으로 축복하시며 그들과 함께 살아 온 야훼 하나님을 언급한 것이다.

 

B. 너를 택하셨다.

택하심이란 신으로부터의 특별한 신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단한 영광에 속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축복을 말하며 창세전에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성도들의 영광에 이르는 가장 큰 자존심에 속한 것이다. 이 자존심은 그 사람의 인격의 주체가 되는데 그 보증이 하나님이라 할 때 그의 인격은 곧 하늘에 속한 것이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택하심에 대하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가 제자가 되어 너희로 과실을 맺게 하고,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요15:16) 하셨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자존심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자존심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재물을 들일 필요 없이 단지 예수의 제자가 되면 당신은 만군의 왕되신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택하였노라 는 은혜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것은 내가 어떤 지위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던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그의 아들과 동일한 사랑으로 나를 대하시고 나를 매우 높이 평가하시며 그 아들에게 주신 영생에 속한 영광을 나에게 함께 분배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우리를 택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나의 존재를 미리 아심을 통하여 택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부르셨다고 증거했다. 이 택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III. 하나님이 분의 뜻을 알게 하셨다.

A. 당신은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주의 종이 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만약 당신이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발탁되어 국가의 중요 직책을 받았다면 당신은 제일먼저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당신의 지혜에 만족하고 당신의 뜻대로 그 직무를 수행하려 한다면 당신은 곧 그 직책에서 쫒겨 날 것이다.

 

수년전 나는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장을 맡았던 래리 테일러 목사를 한국에 초청한 일이 있었다. 레리 테일러 목사는 그의 목회 자서전에서 내가 맡은 모든 일은 나의 스승이신 척 스미스 목사님께서 하실 수 있는 그에게 속한 일들로서 그 일부분을 내가 맡아서 하는 것뿐이라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주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여 오직 이생을 위해서만 산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 좇아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것이라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기록하였다.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는 말씀에 주목하라. 그리고 오늘날 현실 속에 있는 당신의 삶을 돌아 보라. 당신은 무엇을 성취했으며 또 당신이 성취한 일들 가운데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분명한 것은 성경이 이르심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 에 있는 오직 한 생명만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인 당신의 삶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두다 허사이고 공허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망한지 얼마 안된 부자의 아들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모든 것을 남겼다. 했다. 이와 같이 당신이 죽을 당신은 당신이 쌓아 놓은 모든 재물들 중 하나도 가져갈 없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부자청년에게 그 재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에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라. 만약 당신이 그 말씀을 따른다면 당신의 이름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예비하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전혀 행각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살아 간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재능에 아무런 흥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한 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일 주의 영광의 날에 주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미 말씀하신 바 게으른 종아 꾸짖으시며 이 악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될 것이다.

 

B. 바울을 향하신 주님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바울의 증언 속에 나타난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는 것이었다. 주님은 바울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7,18) 말씀하셨다.

 

오늘 이 말씀은 연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지식에서 깨어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갈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 가는 것이다. 이 축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죄사함을 입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는 것이다. 이 일은 택함을 받은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책임인 것이다.  

 

C.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의 자녀된 우리의 삶 속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라 하였고 다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기록하였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이라(벧전 2:11,12) 권하며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할 것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통치자를 보내신 것은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벧전 2:13-15) 하였다.

 

 

D.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어떻게 발견할 있는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 말하였다. 이와 같이 제일 먼저 당신이 해야할 것은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더 이상 당신의 육체를 위해 살아가면 않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이다. 세상적인 방법은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며 그 다음에 해야할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으로 바울 사도는 여기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의 방법이 영적인 예배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당신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영적인 예배의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결심과 노력과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다. 당신은 이 지점에까지 도달하기까지 여러 번 실패를 맛 보게 될 것이며 때때로 좌절하여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 간다면 당신은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 하나님의 시험과 당신의 소망

때때로 하나님은 당신의 결심과 의도를 시험하실 때가 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상과 야곱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형 다윗의 시험을 통해서 익히 공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모든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들렸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 말씀 전체를 통하여 그의 부르신 종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이것은 당신이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것과 또 다른 의미로서 삶의 문제인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이 땅에서 받게 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다고 하여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하였으며 다시 장막에 있는 우리가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 5:4-5) 하였다.

 

나는 바울의 회심의 고백을 들으며 어떻게 하면 바울과 같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 그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아직 어린애와 같은 나의 믿음생활을 생각할 때 정말 주 앞에 죄송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러나 내가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다. 바울도 때때로 실망하여 좌절할 때마다 주께서 서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이 땅에 자기를 믿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을 나는 믿고 있다.

 

주님 당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내가 온전한 깨우침을 터득하지 못하고 게을러 주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여, 바울을 사랑하신 그 긍휼하심으로 나를 돌아 보아 나의 영을 새롭게 하시고 주께서 예비하신 기업을 물려 받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