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7:22) 소년과 사망의 방
(잠7: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본 장에서 솔로몬은 소년시기에 미치는 음녀의 유혹이 그 인생에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에 대하여 예화에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하였고 잘된 나무는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어린 시절의 잘못된 학습이 그 인생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1)
솔로몬은 서두에서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에 대한 교육은 그 아버지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사역의 감독자 된 자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라’(딤전3:4) 하였으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복음은 그 가정을 토대로 삼고 그 자녀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교훈을 대하는 자녀들의 태도에 대하여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눈동자처럼 지키라’ 하였습니다. 먼저 주의 명령이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하며 그 명령이 삶을 주도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법을 눈동자처럼 지키고 손가락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눈동자처럼 지키라는 것은 모든 삶과 사물에서 가장 으뜸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손가락에 매라는 것은 장신구처럼 항상 간직하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양피지 조각에 써 작은 함에 넣어 머리나 손목에 매고 다녔습니다. 또한 마음 판에 새기라는 것은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성애자들의 상담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야 음란한 생각으로부터 떠날 수 있습니까? 음란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해옵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사실상 이미 그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다만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 마음과 육체가 동성애와 같은 음란에 학습되어 그 마음이 더러운 행위에 지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마귀가 아니라 음행에 지배된 그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마음 판에 새길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4절에서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멀리 있는 것 같으나 늘 나를 염려하는 누나와 같은 입장에 있으며 명철이 남 같지 않아서 항상 나의 기업을 물려 받을 친족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하며 주의 법이 내 눈동자가 되어야 하며 내 손의 장신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II. 지혜없는 소년(6-23)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22)
A. 저녁에 거리를 배회한다(6-21)
이제 솔로몬은 음녀 곧 이방여인으로부터 유혹을 당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이끌어 옵니다. 그는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없는 자를 보았노라”(6,7)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소년이 이미 집 밖을 넘어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하였습니다. 음녀의 집은 거리 밖 골목 모퉁이에 있었으며 음녀는 항상 해가 저문 황혼 때로부터 점점 깊어져 종국은 깊은 밤에 등장합니다. 주님은 간음 중 잡혀 온 창녀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소년을 호리는 음녀에 대하여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이 계집은 떠들며 완파하며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거리 어떤 때는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11,12) 하였습니다.
여기서 ‘완파하다’라는 말은 다루기 힘든 짐승과 같이 완악하고 고집이 세며 절제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나는 가끔 내 주변에서 당나귀보다 더 완악한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을 만나고 나면 며칠 동안 심장이 뛰고 심령이 분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13,14)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계집이 ‘화목제’를 드렸다는 말에 놀라게 됩니다. 화목제란 하나님 앞에 특별한 의무를 면하는 헌신의 목적과 고통의 때에 약속한 맹세를 이행할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레7:16). 대개 화목제는 제사장의 위임식 기간에나 또는 나실인의 서원의 날이 끝나는 때에 드리는 감사제 또는 서원제에 속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미 그녀는 순진한 소년을 잡을 목적으로 화목제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나는 가끔 주께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역경들을 줄줄이 읊으며 자신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친 사람이라 말하고 오늘에서야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입술에 꿀을 바른 말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갖은 말로 나를 유혹하다가 자기 말에 넘어가지 않으면 종래에는 나의 멱살을 쥐고 흔들다 꼬리를 감추고 맙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여인은 남편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기생이란 남편을 두지 않는데 이 여인은 원래 남편이 있는 여인으로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자기 욕정을 채우려고 기생옷을 걸치고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요셉을 유혹하던 보디발의 처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녀는 고운말로 소년을 호리었습니다.
B. 소년의 결과(22-23)
문제는 소년이 곧 그녀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소년이 기생의 호리는 말에 유혹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여 이 여인은 자신은 당신을 위해 준비된 여자라는 말에 넘어 갔다는 것이며 두번째로 이 여인이 갖고 있는 화려한 환경에 이끌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 사설과 재물에 미혹된 어리석은 사역자들과도 같습니다.
과거 나와 함께 갈보리채플에 헌신했던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마치 신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 듯 반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다른 교단에 소속하여 무엇인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 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 소년을 보며 ‘소가 푸주를 가는 것과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하였으며 다시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끝은 이미 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III. 사망의 방(24-27)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려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26)
이제 솔로몬은 아들을 향하여 ‘아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하지 말지어다’ 경계하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이 땅의 모든 부모는 자식의 장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좋은 선생을 두고 가르치는데 힘을 씁니다. 그러나 오늘날 보모들은 자식의 출세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녀의 도덕성이나 인품은 둘째로 하고 오직 좋은 대학에 들어가 출세를 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을 둡니다.
흥미롭게도 솔로몬은 26절에서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하였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넌짓이 믿음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린 역사적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6장에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딸들을 임의로 아내로 취하여 패역한 자손들을 퍼뜨린 하늘에서 내어 쫓긴 타락한 천사를 보게 됩니다. 그로 하여 이 땅은 패역한 사람들로 가득차 결국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망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유다서 기자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유1:6)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명망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유다서에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여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기록되었습니다.
그럼 이러한 성경적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들을 넘어 뜨리는 이단 사설들을 경계한 것입니다. 유다는 이를 가리켜 “이 사람들은 무엇인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1:10) 하였으니 이들은 곧 가인의 길로 행한 자들이요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간 자들이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건 데 이들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린 형제를 죽였으며 재물에 눈이 멀어 안식의 땅으로 향하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음행에 물들게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세우신 종 아론의 제사장들을 시기하던 자들입니다. 이 일들은 오늘날 우리 중에도 있는 일로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경계하신 말씀인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배려 하심이 이처럼 크신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기록하였습니다. 어서 우리가 모두 성숙한 주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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